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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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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국사 생애

1206년 일연은 아버지 김언필과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김언필은 밝은 해를 보고 태어났다 하여 아기의 이름을 현명이라고 지었다 합니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고 총명했던 일연은 스님을 무척좋아했고 따라 다녔습니다. 그후 승려가 될것을 결심한 현명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이 때 그의 나이는 13세였습니다.

이 때부터 '현명' 이라는 이름 대신 '일연'이라는 법명을 사용한 그는 학문에 남달라서 배욱고 익혀 고종 13년(1227년)
승과에 응시하여 최고의 영예인 상상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종 22년 몽고의 3번째 침입으로
고려는 계속 어려움에 처했고 이 때 일연은 조국과 백성을 위하여 마음을 다 쏟아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방방곡곡을 다니며 설법을 펼쳤습니다.
사람들은 일연의 설법을 듣고 전쟁으로 인한 불안을 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종은 이러한 일연의 애국심을 치하하여 '선사' 의 칭호를 내렸고 이어 고종46년(1259년)에는 '대선사'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 후 원종 2년에는 왕명을 받아 서울 선월사의 주지가 되었고 당시 왕은 일연의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연은 72세가 되던 해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읽은 후 마지막 결심을 하게 되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설화나 민속, 민담등을 모아 <삼국유사>를엮었습니다. 한편 일연은 83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효심 또한 지극했다고도 합니다.

일연국사 저서

<어록(語錄)>, <게송잡서(偈頌雜書)>, <조동오위(曹洞五位)>, <조도(祖圖)>,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제승법수(諸乘法數)>, <조정사원(祖庭事苑)>

일연국사

428호 인각사보각국사탑및비(麟角寺普覺國師塔및碑)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사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탑비이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룬 승려인데, 노년에 인각사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침에 해가 뜰 때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연스님 어머니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탑은 자연석으로 된 바닥돌 위에 8각의 아래받침돌을 놓았는데 윗면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가운데받침돌 역시
8각으로, 동물을 조각하였으나 뚜렷하지 않다. 윗받침돌은 8각이지만 원형에 가깝고, 단조롭고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몸도 8각으로 정면에는 ‘보각국사정조지탑’이란 탑이름이 있고, 뒷면에는 문모양의 조각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꽃 위에 서있는 보살상(菩薩像)을 새겼다.

지붕의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느리게 들려 있고, 낙수면은 급한 편이며 지붕선 끝부분에 꽃장식이 달려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큼직하게 올려져 있다. 탑비는 국사의 제자인 법진에 의하여 세워졌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으며, 글씨는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 지금은 비의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다행히 비문은 오대산 월정사에 사본이 남아있다.

비문에 의하면 비를 세운 시기가 충렬왕 21년(1295)이므로, 부도탑의 건립 역시 일연이 입적한 해인
1289년에서 1295년 사이의 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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