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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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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대사 생애

신란 경덕왕 때 학자, 자는 총지, 원효가 아버지였고, 요석공주가 어머니이다.
6두품 출신인 듯 하고 관직은 한림에 이르렀다. 신라십현의 한사람이다.
<증보문헌비고>에 경주설씨의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출생시기는 태종무열왕대인 654 ~ 660년 사이로 짐작된다.

설총은 나면서부터 재주가 많았고, 경사(經史)에 박통하였으며 신라말로 구경(九經)을 읽고 후생을 가르쳐 유학의
종주가 되었다. 강수(强首)·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삼문장(新羅三文章)으로 꼽혔다.

설총이 향찰(鄕札;이두)을 고안하였다는 <설총이두창제설(薛聰吏諸創製說)>은 잘못된 것으로, 향가 표기식 방법인
향찰은, 설총 이전인 568년(진흥왕 29) 북한산 비봉(碑峰)에 세운 진흥왕순수비문에 나타나 있고 또 향찰표기 작품인
《서동요(薯童謠)》 《혜성가(彗星歌)》가 진평왕 때, 《풍요(風謠)》가 선덕여왕 때 이미 있었다.

설총은 향찰을 집대성, 정리하였는데, 육경(六經)을 읽고 새기는 방법을 발명하여 한문을 국어화하고 유학 등 한학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공이 컸다. 또 신문왕 때의 국학(國學) 설립에 주동적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설총의 문적(文蹟)으로는 우화적 단편산문인 《화왕계(花王戒)》가 당시 신문왕을 풍간(諷諫)하였다는 일화로서
《삼국사기》 <설총열전>에 실려 있다. 고려 현종 때 홍유후(弘儒侯)의 시호를 추증받았다. 문묘 동무에 최치원과 함께
종향(從享)되었고,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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